1. 들어가며 – BIM, 단지 손짓이 아닌 삶의 언어
언어는 단지 의사소통의 도구가 아니라, 한 공동체의 문화와 정체성을 형성하는 핵심이다. 말레이시아 수어(Bahasa Isyarat Malaysia, BIM) 역시 마찬가지다.
BIM 사용자들은 언어를 통해 감정을 나누고, 일상을 영위하며, 사회 속에서 자신을 표현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수어 공동체가 있다.
이 글에서는 말레이시아 곳곳에 존재하는 수어 공동체의 실상을 조명하며, 그들이 어떻게 BIM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지지하는지를 들여다본다.
2. 수어 공동체란 무엇인가?
수어 공동체는 단순히 청각장애인이 모여 있는 집단이 아니다.
이는 BIM이라는 언어를 공유하며, 그 언어로 사고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문화적 공간이다.
- 언어의 공유: BIM이라는 고유한 언어를 중심으로 상호작용
- 문화의 공유: 수어 시, 유머, 관습, 가치관 등을 공유
- 정체성의 공유: ‘청각장애인’이 아닌 ‘수어 사용자’로서의 자부심 형성
이러한 공동체는 대도시뿐만 아니라 지방 소도시, 심지어 시골 마을에서도 형성되어 있다. 그 형태와 규모는 다르지만, BIM이 중심이 된 삶의 방식은 공통적이다.
3. 주요 수어 공동체 탐방기
1) 쿠알라룸푸르 – DIB (Deaf in Business) Cafe
- 위치: Bangsar South
- 특징: 전 직원이 청각장애인
- 운영 언어: BIM
이곳은 단순한 카페가 아니다.
고용, 교육, 수어 확산이라는 세 가지 사명을 갖고 운영되고 있다. 고객은 주문 시 BIM 또는 간단한 수어 제스처를 사용할 수 있도록 안내받는다.
- 공동체 문화:
- 직원 간 소통은 전적으로 BIM으로 이루어짐
- 수어 교실, 이벤트 등을 통한 수어 외부 확산 노력
- 비수어 사용자와의 ‘자연스러운’ 소통 장벽 허물기
- 방문자의 반응:
- “새로운 언어로 주문하는 경험이 놀랍고 즐거웠다”
- “말을 하지 않아도 따뜻함이 전해졌다”
2) 페낭 – Deaf Empowerment Society of Penang (DESP)
- 활동 영역: 교육, 리더십 훈련, 청소년 멘토링
- 대상: BIM 사용자 청소년 및 청년
DESP는 페낭의 수어 사용자들을 위한 대표적 NGO이다.
이 단체는 수어를 ‘기능’이 아닌 ‘존엄한 언어’로 인식하게 만드는 데 집중한다.
- 주요 프로그램:
- BIM 리터러시 강화 수업
- 수어 연극 및 퍼포먼스 워크숍
- ‘Deaf Role Model’ 시리즈 (성공한 수어 사용자의 강연)
- 문화적 특징:
- 수어 유머가 활발히 공유됨
- 지역 방언 BIM도 자연스럽게 혼합되어 사용됨
- 비판적 사고, 토론이 활발한 공동체
3) 사바 – 농촌 수어 공동체 ‘Rumah Isyarat’
- 위치: Kota Marudu 인근
- 형식: 작은 마을 공동체 내부의 자생적 모임
- 특징: 지역 내 10 가구 이상이 청각장애인을 포함
이 지역은 자연스럽게 수어가 ‘주요 언어’로 기능하고 있다.
말을 하지 않고 손으로 대화하는 것이 일상이며, 심지어 인근 상점 주인들도 간단한 BIM을 습득해 사용한다.
- 특징적인 점:
- 청각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BIM 사용
- 비공식적인 수어 교육이 마을 내에서 이루어짐
- 공동체 내부에 ‘수어 전달자’ 역할을 하는 중개인 존재
- 문화적 의의:
BIM이 ‘필요해서’가 아닌 ‘편해서’ 사용되는 공간. 이것이 바로 수어 공동체의 가장 이상적인 모습 중 하나다.
4. 수어 공동체가 주는 의미
✅ 1) 정체성 형성과 자기 긍정
- BIM 사용자로서의 자부심 형성
“청각장애인”이 아닌 “언어 사용자”로서 스스로를 인식하게 됨
자신의 존재가 소외되거나 부족한 것이 아니라, 다른 언어와 문화를 가진 사람이라는 긍정적 자아 형성 - 비장애인과의 관계 재정립
공동체 외부와의 수어 교류를 통해 ‘받기만 하는 존재’가 아닌 ‘소통을 제안하는 주체’로 변화
✅ 2) 사회적 고립 완화와 정신적 안정
- 정서적 교감의 장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들과 감정을 나누며 외로움을 해소
말이 아닌 손과 눈으로도 충분히 서로를 ‘이해받고 있다’는 감각 획득 - 멘토와 롤모델의 존재
“나도 저렇게 살 수 있겠구나”라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선배 BIM 사용자들의 존재는 정신적으로 큰 힘이 된다.
✅ 3) 문화 창조와 언어 보존
- 수어 시, 연극, 유머의 전승
언어와 함께 움직이는 문화의 다양성이 살아 있음
수어 유머, 속담, 지역 특유 표현 등은 공동체 내부에서 공유되고 계승됨 - 지역 방언 BIM의 보존 역할
지역마다 조금씩 다른 수어 표현들이 공식화되진 않아도, 공동체 안에서는 자연스럽게 쓰이고 기록되며 다음 세대에 전달됨
✅ 4) 교육, 고용, 사회 참여의 발판
- 비공식 교육의 공간
수어를 배우지 못한 이들이 공동체 안에서 자연스럽게 언어를 익힘
실제 상황 속에서의 대화는 학교에서 배운 수어보다 더 실용적임 - 자조적 고용 모델 실현
DIB Cafe처럼 공동체 자체가 수어 사용자에게 안정적인 일자리와 경제적 자립 기회를 제공함 - 사회 정책 형성에의 영향력 확대
공동체가 NGO나 네트워크를 통해 목소리를 낼 때, 정책 결정자들도 BIM을 언어로 인정하고 배려하게 되는 계기 마련
✅ 5) 사회 전체의 인식 전환 유도
- “장애를 극복하는 사람들”이라는 시선 → “자기 언어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인식으로 전환
- 수어는 특정한 집단만의 언어가 아닌, 누구든 배워볼 수 있는 사회적 언어라는 인식 확산
이런 변화는 사회 전체의 포용성(inclusiveness)을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 비수어 사용자가 수어 공동체를 경험하거나 접하게 되면, 기존의 고정관념이 바뀌기 시작한다.
- 공동체는 BIM 사용자에게 실질적인 삶의 기회를 제공하는 플랫폼이 되기도 한다.
- 수어 공동체는 단지 BIM을 사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BIM을 풍부하게 발전시켜 가는 주체이기도 하다.
- 의사소통의 단절은 곧 사회적 고립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수어 공동체에서는 그 벽이 무너지며, 따뜻한 연결이 가능해진다.
- 말레이시아의 많은 청각장애인들은 여전히 주류 사회 안에서 소수자로 존재한다. 그러나 수어 공동체 안에서는 그렇지 않다.
- 수어 공동체는 단순한 모임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BIM이라는 언어를 중심으로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수어 사용자의 정체성과 삶의 기반을 세워주는 사회문화적 생태계라고 할 수 있다.
5. 방문자가 느끼는 인상 깊은 점
수어 공동체를 방문한 비수어 사용자들이 자주 언급하는 감상은 다음과 같다.
- “소리가 없지만, 모든 것이 명확하게 전달된다”
- “손짓 하나에도 감정이 담겨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 “언어는 반드시 ‘말’ 일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배웠다”
이러한 인식의 전환은 공동체 방문 이후 수어 학습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수어가 단순히 ‘누군가를 도와주는 언어’가 아닌, 자기 삶을 풍요롭게 하는 언어로 여겨지는 것이다.
6. 맺으며 – BIM이 중심이 되는 삶의 방식
말레이시아 수어 공동체는 BIM을 통해 살아가는 사람들의 공간이자, 언어와 문화가 함께 호흡하는 장이다.
이곳에서는 손의 움직임이 곧 말이고, 눈 맞춤이 곧 공감이다.
단어 하나를 배우는 것보다,
공동체 한 곳을 느껴보는 것이 BIM을 이해하는 가장 빠른 길일지도 모른다.
말레이시아의 수어 공동체를 방문하거나 그 이야기를 접해본다면,
BIM은 단지 수업에서 배우는 ‘언어’가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들의 ‘삶’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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