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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 수어

말레이시아 수어 통역사 노동 환경과 제도 개선 과제

by wake10 2025. 5. 28.

1. 서론 – 수어 통역사는 언어의 다리를 놓는 전문가입니다

수어 통역사는 단순한 언어 전달자가 아닙니다. 말레이시아 수어(Malaysian Sign Language, 말레이시아 수어)를 사용하는 청각장애인과 비수어 사용자 간의 의사소통을 매끄럽게 이어주는 핵심적인 연결 고리입니다. 이들은 법률, 의료, 교육, 공공 서비스 등 사회 전반에 걸쳐 활동하며, 단어 그 이상의 의미와 감정, 맥락까지 전달하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말레이시아 내 수어 통역사들은 직업적 안정성과 제도적 보호에서 여전히 소외되어 있습니다. 많은 수어 통역사들이 불안정한 고용 환경과 낮은 처우, 그리고 사회적 인식 부족이라는 삼중고에 직면해 있습니다. 이 글은 그들의 현실을 조명하고, 제도 개선의 필요성과 구체적인 방향을 함께 모색하고자 합니다.

2. 말레이시아 수어 통역사의 현실 – 현장 목소리

1) 계약직 중심의 고용 구조

현재 말레이시아의 수어 통역사 다수는 프리랜서 혹은 프로젝트 계약 형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정규직으로 고용되는 경우는 드물며, 대부분 NGO, 학교, 병원 등에서 시간제 또는 단기계약으로 일하게 됩니다. 이러한 구조는 통역사의 생계에 큰 불안정을 초래합니다. 수입이 일정하지 않으며, 근무 조건도 매우 유동적입니다.

특히 팬데믹 시기와 같은 사회 위기 상황에서 일자리가 급감하며 많은 통역사들이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장기적인 커리어를 설계하기 어려운 환경은 전문 인력의 이탈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2) 낮은 임금과 과소평가된 전문성

수어 통역은 언어적 지식뿐 아니라 문화적 감수성, 윤리 의식, 감정 조절 능력까지 요구되는 고난도 직업입니다. 특히 의료 통역이나 법정 통역은 정확성과 중립성이 생명을 좌우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어 통역사들은 여전히 ‘보조 역할’로 인식되며, 시간당 임금도 타 통역 분야에 비해 낮은 편입니다. 일부 기관에서는 자원봉사 수준의 보수를 제안하거나, 통역사의 경력을 무시한 채 단순 업무로 간주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습니다.

3) 감정 노동과 직무 스트레스

청각장애인의 입장이 되어 그들의 감정과 입장을 정확히 전달해야 하는 수어 통역사는 높은 수준의 감정 노동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병원에서 암 진단 결과를 통역하거나, 법정에서 가정폭력 사건을 통역할 때 심리적 충격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경우도 많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정서적 부담을 관리할 수 있는 심리 상담, 휴식 제도, 감정노동 보호 프로그램은 거의 마련되어 있지 않은 상태입니다.

3. 제도적 한계 – 왜 보호받지 못하는가?

1) 법적 지위의 불명확성

말레이시아에는 수어 통역 관련 민간 인증제는 존재하지만, 국가 공인 자격제도는 아직 미비합니다. 이로 인해 수어 통역사라는 직업은 공식적인 노동 법제나 복지 제도에서 제외되기 쉬우며, 고용 계약이나 급여 기준에서도 명확한 기준이 마련되지 않았습니다.

정식 직업 분류 코드나 노동 표준이 없는 상태에서는 법적 권리를 요구하거나, 부당한 대우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기도 어렵습니다.

2) 공공 서비스 정책에서의 배제

의료기관, 법원, 경찰서 등에서의 수어 통역사 배치는 ‘의무’가 아닌 ‘권장’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정부의 장애인 접근성 확대 정책에서도 수어 통역은 부차적인 항목으로 다뤄지며, 실질적인 예산 지원이나 정책 집행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이로 인해 공공기관을 이용하는 청각장애인은 여전히 정보 접근에 제약을 받고 있으며, 수어 통역사의 필요성도 현장에서 과소평가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3) 양성 시스템과 재교육의 한계

말레이시아 내 수어 통역사 양성 교육은 대부분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어 지역 간 격차가 큽니다. 교육 커리큘럼도 이론 중심이며, 실제 현장에 투입될 수 있는 실습 기회나 인턴십 프로그램은 부족한 편입니다. 또한 자격 취득 이후 지속적인 재교육 체계가 없어 전문성을 유지하기가 어렵습니다.

4. 현장 변화의 움직임 – 개선을 위한 노력들

1) 통역사 협회와 조합의 자발적 연대

수어 통역사들은 스스로 협회나 네트워크를 결성하여 공동의 임금 기준을 마련하고, 부당한 대우에 대응하고 있습니다. 일부 지역에서는 협동조합 형태로 고용과 교육, 권익 보호를 동시에 추구하는 조직이 등장하고 있으며, 이는 제도 밖에서 발생하는 자조적 변화의 좋은 사례입니다.

2) 공공기관 정규직 채용 시도

최근 몇몇 주정부에서는 수어 통역사를 보건소, 복지센터, 공립학교 등 공공기관에 정규직 또는 계약직 형태로 채용하는 사례가 생겨나고 있습니다. 이는 정부 차원에서 수어 통역을 필수 서비스로 간주하고 있다는 긍정적 변화이며, 향후 전국적 확대가 기대됩니다.

3) 청원 운동과 정책 대화의 시작

청각장애인 커뮤니티와 수어 통역사들은 함께 청원서를 제출하고, 관련 부처에 정책 제안을 하며 입법화를 요구하는 활동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교육부, 여성가족부 등 일부 부처에서 수어 통역사 제도화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말레이시아 수어 통역사 노동 환경과 제도 개선 과제

5. 향후 과제 – 통역사 제도화와 사회적 인식 개선

말레이시아 수어 통역사가 존중받으며 안정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다음과 같은 과제들이 시급히 추진되어야 합니다.

  • 공식 직업 분류 및 법적 보호 제도화: 국가 공인 수어 통역사 자격제도 수립, 노동법 내 권리 보호 항목 포함
  • 임금 및 복지 기준 마련: 전문성과 경력에 따른 임금 체계 수립, 프리랜서 대상 보험 및 복지 제도 도입
  • 공공기관 통역사 상시 배치 의무화: 법원, 병원, 경찰서 등 주요 서비스 기관에 통역사 상근제 도입
  • 전문 교육과 지속적 재교육 체계 마련: 이론과 실습을 병행한 커리큘럼, 지역별 양성기관 확충, 연간 재교육 필수화
  • 심리적 지원 시스템 도입: 감정 노동자 보호를 위한 정기 상담 및 워크숍 운영
  • 사회 인식 개선을 위한 대중 캠페인 전개: 수어 통역사의 전문성과 공공성을 알리는 미디어 캠페인, 홍보 영상 제작

마무리 – 말없이 이어지는 사회를 위해

말레이시아 수어 통역사는 청각장애인의 ‘귀’이자, 비수어 사용자의 ‘손’입니다. 그들이 없으면 정보는 단절되고, 감정은 막히며, 사회는 서로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수어 통역사들이 안정적으로 일하고, 존중받으며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은 결국 더 포용적인 사회를 만드는 길과 맞닿아 있습니다.